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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재철 의원에게 보내는 한 ‘386’의 편지

오늘 심재철 의원이 모 방송과 인터뷰한 내용을 전해 듣고 어안이 벙벙합니다.
아직 그 실체도 명확히 규명되지 않은 ‘간첩 사건’을 ‘386 세대’, 엄밀히 말하면 정치권 386들과 연관시키려는 뻔한 의도에 분노가 치밀면서도, 하필 이 시점에서 심 의원이 왜 그런 발언을 하고 있는지 들여다 보았습니다. 이번 사건을 ‘변절자’라고 낙인찍힌 자신의 음습한 과거로부터 도피하기 위한 기회로 삼고 있는 것을 보니 연민의 정마저 느껴집니다.


심 의원은 ‘후배 386’ 운운하며 정치권 386을 겨냥, 교묘히 매카시즘적 이념재판을 선동하고 나섰습니다. 심 의원이 어떤 의도로 말한 것인지는 충분히 짐작할 수 있으나, 단지 당신의 뒷세대라는 이유만으로 후배취급 하는 것이 정치권에 있는 386들에게는 매우 불쾌한 일이고, 우리 세대 전체에 대한 충고라면 그것은 ‘주제넘은 충고’이며 상당히 무례하고 모욕적인 언사임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우리 사회에 낡은 이념으로 세상을 재단하려는 극소수의 사람이 있는지 모르겠지만, 엄밀히 얘기해서 당신의 영향력과는 무관하게 성장해 온 대다수 386 세대들은 각자의 사회적 위치에서 누구보다도 능동적이고 역동적으로 사회문화적 변화를 선도해 가고 있습니다. ‘수구좌파적 생각을 갖고 이데올로기에 빠져 있는 독선적이고 폐쇄적이며 배타적인 386’은 심 의원 같은 분들이 만들어 놓은 허깨비에 불과할 뿐이며, 극소수의 시대착오적인 이념추종자들은 이미 우리 사회에서 의미있는 존재가 되지 못하고 있습니다. 심 의원이 지적한 대로 세상이 너무도 변한 것이지요.


정말 세상은 많이 변했습니다. 당신과 함께 투옥됐다가 불구가 되거나 유명을 달리한 분들이 민주화 유공자로 지정이 되고, 당신이 독재권력에 투항한 이후에도 감옥에 남겨졌던 이들이 정권의 주체가 되기도 했으니까요.
심 의원 같은 분은 세상의 변화가 그냥 시간의 흐름처럼 허허로이 이루어진 것으로 위안을 삼고 스스로를 합리화하고 싶겠지만, 세상의 변화는 그렇게 낙낙하게 오지는 않았습니다. 1980년 서울의 봄 이후, 우리 사회의 민주화를 위해 얼마나 더 많은 희생과 눈물이 필요했었는지를, 심 의원은 이제 그것까지 애써 외면하는 것인지, 이제는 그마저도 볼 수 없는 눈 뜬 장님이 된 것인지 안타깝기만 합니다.
심 의원이 ‘세상이 너무도 변했는데 옛날 생각에 머물러있고 이데올로기에 빠져 있는 386’들을 보면서 ‘굉장히 비극’이라고 말씀하셨지만, 진짜 비극은 ‘수구냉전적 생각을 갖고 이데올로기에 빠져 있는 독선적이고 폐쇄적이며 배타적인’ 심 의원 같은 분이 이렇게 변한 세상에서 시류에 편승하고 진실을 호도하며, 개인의 변절을 합리화하고자 벌이는 허깨비 놀음입니다.


심 의원은 ‘사람들이 좌파를 버렸다는 이유로 배신자’라는 꼬리표를 붙인 것이라고 하면서 ‘좌파가 잘못된 것이니까 버리는 게 당연한 것’이며, ‘당시에는 좌파도 없었다’고 말씀하셨다지요. 처음에는 심 의원이 그런 환청에 시달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 측은함이 느껴졌습니다. 그러나 이어진 발언들을 보면서 이것은 자의식의 분열에서 오는 자기 방어적 ‘환청’이 아니라, 자신과 관련된 역사적인 진실마저도 완벽히 조작하려는 고도의 정치적 발언임을 확인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최소한의 연민마저 거두어야 했지요.


역사를 상대로 하는 ‘위선의 재판’이야말로 용납될 수 없는 ‘배신’입니다. ‘좌파’를 버렸다고 ‘배신자’로 낙인찍혔다는 심 의원의 착각은, 우리 사회가 바른 방향으로 변화해 가는 한 절대로 치유될 수 없는 심 의원의 ‘고질적인 피해망상증’의 발로일 뿐입니다.
진짜 배신은 과거에도, 현재에도, 미래에도, 국민의 뜻을 거역하고 현실의 권력에 투항하는 반양심적 정치 행태를 칭하는 말이 될 것입니다. 그것마저도 용서하고 포용하는 국민들을 향해 ‘허깨비와 싸우라’며 핏대를 올리는 심 의원의 낡은 정치행태를 언제까지 보아야 할지 답답할 뿐입니다.


간첩사건은 수사기관에서 철저하고 엄중하게 수사해야 합니다. 수사당국은 과거 멀쩡한 사람들을 수도 없이 정신적으로 육체적으로 죽어나가게 했던 정권안보용 간첩사건을 반면교사 삼아, 법과 양심에 따른 엄정한 법집행으로 명명백백 실체를 밝혀야 할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심 의원께 충고드리고 싶습니다. 자신의 과거를 벗어나기 위해 몸부림칠수록 늪은 깊어집니다. 386 세대들을 희생양 삼아, 암울한 변절의 늪에서 빠져나와 보려는 몸부림이 얼마나 어리석은 짓인지 하루라도 빨리 깨닫게 되길 빕니다. 그것이 심 의원이 지금보다는 조금 더 과거로부터 자유로워지는 길일 것입니다.


2006년 11월 1일
열린우리당 부대변인 유 은 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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